이번 숲 키친 때는 한미 그리스도 생활 공동체 회원을 모두 합해서 6명 밖에 오지 않았고 그중에 한 분이 미사는 드리지 못하고 가셔서 댄 신부님은

로욜라 성당에서 회원 다섯명만을 앞에 놓고(저는 고즈넉한 미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마는) 준비해 오신 강론을 해 주셨는데 아까워서 이곳에 옮깁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해주시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삶과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이 누구시고 우리와 어떻게 상대하시는지 보여주신다.

 

예수님에게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건은 많지만 친구들에게 들려온 중풍병자의 예를 보자.

친구 네 명은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야 했지만 가난한 이들로 붐비는 좁은 방에 가득한 군중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지붕의 타일을 벗겨내어 군중의 한 가운데, 예수님 앞으로 평상에 누운 불구인 친구를 내려보냈다.  예수님은 그를 받아들이시고 그의 죄를 사하시고 치유해주셨다.

 

우리는 이런 일을 당연시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좀 살펴보자. 

 

첫째, 예수님이 이기주의자셨다면 어떻게 응답하셨을까?  "이것 보시오, 무슨 짓을 하는게요? 내가 설교를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시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중요한 메세지가 있오.  지금은 치유를 위한 시간이 아니오.

치유는 수요일인데 오늘은 화요일이니 갔다가 다시 오시오.  이 사람을 좀 데리고 가시오."

 

예수님이 시간에 대해 까다로운 분이셨다면 "미안하지만 약속을 했나요?  내 수행비서 시몬과 나를 보기로 시간약속을 했나요?  안 했다면 약속을 하고 다른 때 오시오.  나는 바쁜 사람이오.  이 사람을 좀 데리고 가시오."

 

예수님이 엄격한 실용주의자였다면 지붕으로부터 내려오는 환자를 보고 "당신은 지붕을 어떻게 한거요?  보통 뱃장이 아니구료.  주인장에게 허락을 받았소?  안 받았다면 그가 당신에게 지붕을 고쳐달라고 고소를 할 거요.  이렇게 난폭하게 끼어들 권리를 누가 주었소?  이사람을 좀 데리고 가시오."

 

우리가 이 행동들을 이성적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이시고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안다.  그리고 예수님이 위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도...  예수님은 그가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그를 환영하셨다.  그와 그의 친구들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즉석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치유해주시고 일어나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그 분이 우리가 필요한 때 도우려 주의를 기울이는 사랑을 본다.  우리는 약속을 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오기를 기다리시며 성부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신에게 가면 두 팔을 벌려 환영하신다. 

 

이런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안다면 우리는 물론 즐거워하며 그분의 생일을 축하드리기를 원한다.  평상의 남자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심을 알아본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이 있으시고 우리 모두에게 사랑 안에서 접근하신다. 

 

우리가 심판받으러 하느님께 가면 하느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우리가 "나는 예수님의 친구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미소로 "환영한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